태그 : 행복

행복해야해

이번 주말에 만날까? 나 이제 주말에 바빠. 데이트해야 하거든... 메신저 네 글에서 난 기쁨과 들뜸, 경쾌함과 설렘을 읽을 수 있었어. 처음이라고, 그렇게 널 좋아해 준사람. 기도하면서 잘 만날거라고 했던 메신저 속 목소리가 이렇게 생생한데 벌써 결혼이라니.. 그동안 용인과 양주를 오가며 데이트하느라 얼마나 행복했을까. 거리와 만나는기쁨은 비례하는 법이니... 내가 아는 크리스천 중에선 젤 미련할 정도로 순수한 네가 너를 진심으로 좋아해주고 네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니 난 정말 기뻤고 또 기쁘다. 행복해야해 꼭. 네가 기도한만큼~ 그만큼 행복하다면 넌 세상에서 젤로 행복한 사람이 될테니까.

by 소리 | 2009/03/26 10:17 | 혼잣말 | 트랙백 | 덧글(2)

지금, 행복하기

얼마전 어떤 토크쇼에서 최명길이 남편 김한길을 만나게 된 얘기를  했었다. 자기가 라디오 DJ를 하고 있을 때 손님으로 출연했다가 바로 그날부터 밤새워 통화를 했었다고. 그리고 얼마 만나지 않아 김한길이 적극적인 프로포즈를 했었다고.
그런데 아래의 글(미르님 블로그에서 펌. 미르님은 번역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글을 인용하셨지만)을 보니까 김한길은 어떤 깨달음 뒤에 '지금' 놓치지 않아야할 것을 알고, 행동으로 옮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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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 5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 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 즈음의 그녀가 간혹 내게 말했었다.
"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 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였나봐요.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집 앞에 서는 거예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 대를 사줬다고 해도
내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서울의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내시곤 했다.
"한길아,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뜨려 놓기가 일쑤란다"

anyway,
미국생활 5년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재의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3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김한길『눈뜨면 없어라』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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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린 많은 것을 미래를 위해 유보하거나 포기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아이들)에게도 강요한다. (지금)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될거라고. 모 생명보험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우리가 늙으면 노후 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 OO억은 있어야 해(정확한 액수는 생각이 안 난다.. 십억단위였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고, 주말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 또 어떤 사람은.. 두 부부가 1000만원이 넘게 버는데 그 중에 몇 백만원을  보험으로.. 그사람들의 꿈은..." 들리지 않았다. "그래?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라고 대답했지만 놀랐었다. 그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그는 보험 판매 사원들을 교육하고, 시간이 날 때면 땅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그는 이제 삼십대 초반인데, 물려받지 않았는데도 이미 두 채의 집이 있고, 땅이 얼마간 있지만.. 난 그가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안타까웠달까.
그는 학교 다닐 때, 선교회 활동을 하며 정말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친구였다. 일주일 중 5일은 션교회나 교회에 관련된 일로 저녁을 보낼 정도로... 내가 언젠가 꿈에 대해서 물었을 때, 직장생활 하다가 십년 후쯤 아프리카로 (선교) 갈 거라고 했다. 당시엔 그가 그런 꿈을 갖고 있다는 게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랬던 그가 '현실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놀랐다. 
그런데.. 그게 현실적인 것일까? 미래를 위해 '지금의 현실'을 억압하는 것이?
김한길 전 부인의 말처럼, 몇 년 후에 생길 백 대의 피아노, 혹은 그랜드 피아노보다 지금 한 대의 피아노가, 아니 입으로 부는 멜로디언이 더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은퇴 후에 골프를 치고, 은퇴 후에 여행을 다니고, 은퇴 후에 은퇴 후에...
그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살고 있진 않은가??

그러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하는 것. 바로 지금!!
알지만 용기가 없는 것일까..?

by 소리 | 2009/03/20 13:21 | 트랙백 | 덧글(2)

슬픔에만 빠져있을 수 있는 낭만.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물이 흐르고, 그렇게 슬픔 중에 빠져있으면서도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더 서.글프다. 아래의 오랜만에 맑음이라는 포스트를 부러 밝게 쓰고 나서 메일을 확인하는데,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보낸 지 한 달만에 온 답장.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세요." 다 털었다고 생각했는데, 사랑한 시간만 아름답게 기억하자고, 이제 담담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참을 수 없어서 사무실을 나가서 바깥계단에서 울고 있는데, 사람 없는 그 계단에 하필이면 외근 나가는 동료가 나를 부르며 인사를 한다. 어쩔 수 없이 돌아보아야 했던 나, 아차 실수 한 것 같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가는 동료. 나는 또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야 했고, 밤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 스무살이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냥 그 슬픔에 빠져서 며칠이라도 앓고 싶다는... 이기심, 욕심, 어린아이 같은 마음.


작년, 아빠가 아팠을 때도 그랬다. 네 번의 입원과 세 번의 수술, 그 끝자락에서 엄마가 "느이 아버지 이제 더이상 못 살것 같다."라고 하셨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두 다리는 떨려서 서 있을 힘이 없었지만, 당장 내야할 병원비 걱정과 만약 돌아가신다면 어디로 모셔야하나 라는 생각을 해야했다. 아버지 이름으로 든 보험에서 받을 수 있는 병원비 혜택을 계산해야했다. 아빠가 이렇게 아프신데, 걱정해야 하는 것이 돈이라는 생각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슬픔에 빠질 때, 그 슬픔에만 빠져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낭만이다.

by 소리 | 2007/09/09 17:57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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