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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성경의 계명들은 말하자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율법주의의 가장 큰 차이는 뭐냐 하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판정하는 기준이 뭐냐 할 때 '자랑'입니다. 자랑이란 그것을 인과관계로 이해한 사람들이 가지는 자기의 결과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자랑이 있는 곳에는 하느님의 은혜가 설 자리가 없고 자랑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자리하지 못합니다.
내가 기독교 신앙을 자랑으로 이해하느냐, 행위로 이해하느냐, 능력으로 이해하느냐 은혜로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본인의 신앙을 자랑으로 가지느냐의 문제인데 자랑을 하면서도 모르는 수가 있습니다. 겸손이란 이름으로 누르고 있으면 본인이 자랑하는 줄 모릅니다. 어떻게 자기가 자랑하는 줄 아느냐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한심해 보인다면, 자기가 지금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건 왜 기독교 신앙을 저따위로 할까 그때는 본인이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더 할 수 있는데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은 왜 이 문제를 이렇게 끈질기게 언급하고 경고하느냐 하면 그때 우리가 도달하는 신앙의 경지는 하느님이 약속한 신적 거룩의 경지가 아니라 윤리와 도덕의 최상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렇다. 나에게 예수가 신앙이 아니라 철학이라도, 혹은 푯대라도, 나도 모르는 새 나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면, 그건 자랑이다. 게다가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누르고 있다면 더욱더.

by 소리 | 2009/01/20 08:52 | 혼잣말 | 트랙백 | 덧글(0)

물처럼

공의를 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것은, 물이 낮은 데를 먼저 채우고 차 오르듯이 가장 낮은 데부터 그 뜻을 실현시키라는 이야기입니다. 낮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일을 '베푸는 일'이 아니라 그저 내 이웃의 일처럼, 내 형제의 일처럼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맞아, 내가 아는 하느님은 저런 하느님인데... 내가 기대했던 하느님은 저런 하느님이었는데, 싶었다. 하느님을 섬겨야 세상에서 승리하고, 예수를 영접해야 천국에 가고,- 이 말이 완전히 틀리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 말고, 바로 저와 같은 말을 듣고 끄덕이고 싶었던 것 같다. 무언가 뚫리는 듯한 주말이었다.

 또 그 간절함이야 이해하지만, 그리고 인간의 힘은 부족하기에 늘 그의 능력을 구해야겠지만,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100일기도를 하고, 배우자를 위해 새벽기도를 하고,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헌금을 하고(실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하면 곳간을 더 많이 채울 수 있다는 식의 설교를 하곤 한다.), 그러는 것이 성황당에서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기도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저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기도의 이유와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야학에 처음갔을 때, 교무교사가 물었다. 야학에 왜 왔냐고,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봉사'라는 말을 싫어했던 때였기에, 그렇게 말하면 좀더 나을 것 같았었는지... 그때 그 교무선생님은 나누기 위해 오지 말고, 함께 하기 위해 오라고 말했다. 그말의 차이를 처음엔 잘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얼마나 교만했었는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차별이 필요하다." 는 말의 뜻을 '물'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이 똑같이 1mm씩 차오르지 않는 것처럼 낮은 곳에 더 많은 물이 필요한 것처럼, 차이가 있는 곳에 더 많은 차별(물?)이 필요하다.

by 소리 | 2008/11/17 08:27 | 보고 듣고 느끼고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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