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25일
형통과 자유에 대한 오해
우리가 인간으로 살며 인생으로 산다는 것을 그런 제약들을 제거하는 것이 기독교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참다운 인간으로 사는 시간과 공간의 혜택들을 놓치는 것이 됩니다. 막연히 모든 장애를 제거 받아서 아무 걱정도 필요없고 고민도 없고, 갈등도 없고, 그래서 성찰도 없고 반성도 없고 노력도 없고 울 일도, 가슴을 졸이는 일도 없는 것이 기독교인이 가지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어느 시대나 그렇듯이 현실적인 실패가 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자유롭게 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첫 결심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아직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묻는 나는... 모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두렵기 때문이지. 그런거 있잖은가. " 너 진짜로 그거 하고 싶어?" 이런 물음.ㅎㅎ
# by | 2009/02/25 08:46 | 보고 듣고 느끼고 | 트랙백 | 덧글(2)
2009년 01월 20일
자랑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성경의 계명들은 말하자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율법주의의 가장 큰 차이는 뭐냐 하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판정하는 기준이 뭐냐 할 때 '자랑'입니다. 자랑이란 그것을 인과관계로 이해한 사람들이 가지는 자기의 결과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자랑이 있는 곳에는 하느님의 은혜가 설 자리가 없고 자랑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자리하지 못합니다.
내가 기독교 신앙을 자랑으로 이해하느냐, 행위로 이해하느냐, 능력으로 이해하느냐 은혜로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본인의 신앙을 자랑으로 가지느냐의 문제인데 자랑을 하면서도 모르는 수가 있습니다. 겸손이란 이름으로 누르고 있으면 본인이 자랑하는 줄 모릅니다. 어떻게 자기가 자랑하는 줄 아느냐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한심해 보인다면, 자기가 지금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건 왜 기독교 신앙을 저따위로 할까 그때는 본인이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더 할 수 있는데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은 왜 이 문제를 이렇게 끈질기게 언급하고 경고하느냐 하면 그때 우리가 도달하는 신앙의 경지는 하느님이 약속한 신적 거룩의 경지가 아니라 윤리와 도덕의 최상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독교 신앙을 자랑으로 이해하느냐, 행위로 이해하느냐, 능력으로 이해하느냐 은혜로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본인의 신앙을 자랑으로 가지느냐의 문제인데 자랑을 하면서도 모르는 수가 있습니다. 겸손이란 이름으로 누르고 있으면 본인이 자랑하는 줄 모릅니다. 어떻게 자기가 자랑하는 줄 아느냐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한심해 보인다면, 자기가 지금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건 왜 기독교 신앙을 저따위로 할까 그때는 본인이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더 할 수 있는데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은 왜 이 문제를 이렇게 끈질기게 언급하고 경고하느냐 하면 그때 우리가 도달하는 신앙의 경지는 하느님이 약속한 신적 거룩의 경지가 아니라 윤리와 도덕의 최상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렇다. 나에게 예수가 신앙이 아니라 철학이라도, 혹은 푯대라도, 나도 모르는 새 나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면, 그건 자랑이다. 게다가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누르고 있다면 더욱더.
# by | 2009/01/20 08:52 | 혼잣말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