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7일
물처럼
공의를 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것은, 물이 낮은 데를 먼저 채우고 차 오르듯이 가장 낮은 데부터 그 뜻을 실현시키라는 이야기입니다. 낮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일을 '베푸는 일'이 아니라 그저 내 이웃의 일처럼, 내 형제의 일처럼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맞아, 내가 아는 하느님은 저런 하느님인데... 내가 기대했던 하느님은 저런 하느님이었는데, 싶었다. 하느님을 섬겨야 세상에서 승리하고, 예수를 영접해야 천국에 가고,- 이 말이 완전히 틀리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 말고, 바로 저와 같은 말을 듣고 끄덕이고 싶었던 것 같다. 무언가 뚫리는 듯한 주말이었다.
또 그 간절함이야 이해하지만, 그리고 인간의 힘은 부족하기에 늘 그의 능력을 구해야겠지만,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100일기도를 하고, 배우자를 위해 새벽기도를 하고,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헌금을 하고(실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하면 곳간을 더 많이 채울 수 있다는 식의 설교를 하곤 한다.), 그러는 것이 성황당에서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기도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저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기도의 이유와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야학에 처음갔을 때, 교무교사가 물었다. 야학에 왜 왔냐고,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봉사'라는 말을 싫어했던 때였기에, 그렇게 말하면 좀더 나을 것 같았었는지... 그때 그 교무선생님은 나누기 위해 오지 말고, 함께 하기 위해 오라고 말했다. 그말의 차이를 처음엔 잘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얼마나 교만했었는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차별이 필요하다." 는 말의 뜻을 '물'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이 똑같이 1mm씩 차오르지 않는 것처럼 낮은 곳에 더 많은 물이 필요한 것처럼, 차이가 있는 곳에 더 많은 차별(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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