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06일
한옥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승리
"아름답고 멀쩡한 한옥을 두고, 왜 전국을 똑같은 콘크리트 덩어리로 채우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오늘 아침 <시선집중> 미니인터뷰에 나온 피터 바돌로매(맞나?)씨의 말이었다. 동소문동의 한옥촌을 재개발에 맞서 소송끝에 어제 이겼다고 한다. 노후주택이 60%이상이 돼야 하는데, 60.X%로 가까스레 넘겨서 재개발 될뻔 한 것을 주위 주민들을 설득해 몇 채의 주택들이 노후 주택이 아님을 제기하여 승소를 했다. 그는 처음 한국에 평화봉사단으로 와서 한옥에 살아보았고, 정착하기로 한 후 한옥에 살고 싶어서 동소문동에 집을 얻어 40년 가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라기에 약간 외국 억양이 섞였을 거라 생각했는데, 외모는 보지 못했지만 라디오로 듣기로는 완전 한국인 말투였다. 하긴 거의 40년을 한국에서 살았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변두리 개발 구역에서만 쭉 살아서 난 한옥에서 살아 본 적이 없고, 친근하게 동네에서 본 적도 없다. 요즘도 드라마를 보다가 마당에서 세수를 하는 장면이 나오면 어색하다. 남산 한옥 마을이나 인사동 찻집들이나 그렇게 꾸며진 한옥들만 보아서인지 한옥이 참 아름답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보기엔 좋아도 사는 사람은 불편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한옥촌들이 남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있어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원치 않을지 모르기 때문에 계속 그곳에 살라고 하는 건 제 3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서 소송을 하고 이겼다고 하니, 기쁘고 또 고마웠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돈이 된다면?) 한옥에서 살고 싶다. (땅값이 비싸니까, 구입할 수는 없을 테고, 전세로) 작은 나무 한 그루 심을만한 마당이 있고 방이 두어 칸쯤 있는 그런 작은 한옥은 얼마나 할까?
난 한옥에 살아본 적도 없지만, 아파트에도 살아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기억하는 첫 집은 6살 때까지 살았던 화곡동 집, 전세였지만 독채여서 마당도 있고, 담장으로는 넝쿨장미가 가득하고 연못도 있었던 집이다. 그리고 7살에 이사간 신월동 집. 그 집은 우리 엄마 아빠의 첫 자가 주택이었다. 그 집에서 5년여를 살았고, 나와 내동생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연립주택이었지만 배란다 앞에 작은 뜰이 있었고, 배란다에서 참외씨를 뱉으면 참외가 나기도 했던 추억도 있다. 그리고 사춘기무렵 이사갔던 발산동 2층집. 두번째 자가 주택이자 우리 엄마 아빠의 마지막 자가 주택이었던 그 곳에서 5년 여를 살았다. 마당은 좁았지만 산이 가까워서인지 그 집에서 나는 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틀어 새끼를 기르는 것도 보았고, 벌집이 생기는 것도 보았다. 한옥은 아니었어도 연립이나 아파트와는 달리 처마(맞나?)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암튼 그러고 나서는 다시 전세를 전전했는데, 1~2년에 한번씩 이사를 다녀서 그닥 추억은 없다. 지금 사는 풍납동 집도 작년 9월부터 살기 시작했는데, 집주인이 집을 내 놓으면서 이사를 가야할 처지다. 20년도 더 된 연립이어서 물도 잘 안나오고, 녹물이나 파이프 찌거기도 간혹 보여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나가야할 처지에 이르니 괜히 속상했다.
모두 집을 가지려고 했기 때문일까. 다른 물가에 비해서 집값은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타서 이제 서울 변두리의 작은 연립(마당도 없이 다닥다닥 붙은)들도 몇억씩 하니, 월급쟁이들은 포기하거나 아니면 평생 이자만 갚으며 살거나 한다. 주변에도 부모의 도움 없이 내집마련을 한 사람은 없으며, 집을 샀더라도 원금은 엄두도 못 내고 이자만 갚으면서 살고 있다.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원금을 갚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20여년 전, 우리 엄마 아빠가 처음 집을 장만할 때만 해도 알뜰하게 월급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새로 지은 연립이었고, 당시에 천 몇백만원했었는데, 융자를 끼고 몇 백만원만 주고 들어가서 살면서 갚았다고는 했다. 그때 아빠 월급이 20만원인가 30만원인가 그랬다니까 3~4년치 봉급을 모으면 가능한 금액이었다. 아빠는 지금도 나와 내동생에게 "그래도 우리 때는 열심히 절약하면 집을 살 수 있었어. 하지만 너희 때는 내가 보기에도 불가능할 거 같아"라고 하신다. 당시 아빠 월급으로 쌀 10가마니를 살 수 있었다고 하니까, 지금으로 치면 200만원쯤 되겠다. 하지만 3~4년치 꼬박 모아도 아파트 전세도 얻기 힘든 금액이다. 우리집처럼 변두리 작은 연립 전세를 얻을 수 있는 금액정도다. 지금 우리집이야 빚이 반 이상이지만..ㅋ
그래서 시프트 청약 경쟁률이 엄청난 것 같다. 내 집이 없는 사람들에겐 이사가 가장 큰 문제인데, 자녀를 둔 사람들은 아이들 전학과 정서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또 사람들이 자주 이사를 다니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이웃간의 교류가 적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개인주의화 되는 성향이 더 크겠지만...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고, 매년 5%정도의 상승만 허용된다니 그렇게 몰릴 수 밖에. 시프트 청약 중 우선 분양이라는 게 있다. 아이를 낳은 신혼부부나 노부모 부양 세대주에게 해당되는 것인데, 가구 소득이 도시 근로자가구 평균 소득의 70%이하여야 한다. 그러면 주택 가격도 그 수준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가장 저렴한 곳이 1억 3천 수준이며, 재건축 우선분양의 경우는 3억원 하는 것도 있어서(물론 전세다), 미달되고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라.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 소득의 70%되는 사람이 많은 가족들을 부양하며 돈을 모아서 억대의 전세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을... 아주 작은 곳은 9천 5백만원 하는 곳(39제곱미터형-약 12~13평?)도 있지만, 다자녀, 노부모 부양하는 가족에겐 너무 좁다. 작은 방이 2개와 부엌겸 거실이 나오는 구조라 노부모 부양 가족의 경우 부모를 한방에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방을 써야 하거나, 노부모를 부양하지 않더라도 아이들(3자녀이상)을 모두 한 방에서 키워야 한다. 그래도 작은 평수의 경쟁률이 엄청난 걸 보면, 주거 환경이 그토록 불안정한 사람이 얼마나 많다는 건가.
주택 보급률이 120%란다. 그래도 주택 보급률이 80%에 못미치던 80년대 보다 자가 주택에서 사는 사람들은 더 적다고 한다. 집이 남는다는데 자꾸 건설만 해서 경기를 부양할 게 아니라, 지금 미분양된 집들을 정부가 사서 서민들에게 전세로 돌리는 그런 정책은 왜 안 쓰는 거지? 몰라서 묻냐고? 아니 정부라면 그래야되지 않느냐 말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해서 못하나..? 경제에는 작은 정부, 권력에는 큰 정부... 여전히 씁쓸하다.
# by | 2009/06/06 00:03 | 소소한 일상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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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옥을 관리하는 건 누구나 아는 얘기인데 그걸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편한 길을 선택한 그야말로 '실용' 정책이 결국은 나라꼴을 망가트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명박도 '실용'이 모토이니 더 하면 더 하지 덜 하지는 않은 듯해요.
이제 한옥은 안동이나 서울에 북현?이던가요 거기에 가야 볼 수 있을 듯하네요.
참, 아타까운 현실이다라고 느꼈습니다. 많은 주위 이웃분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주의자 외국인. 그래요. 한옥사랑은 우러러 높이 평가합시다. 그러나 아무리 한옥이 좋다고 이웃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손해를 끼치는 파렴치한 외국인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외국인만 사람이고 많은 자국민은 멉니까? 다른 집 한옥은 비가 새고 허물어지는데 지키자고? 지키라고? 에라~이 죽일 넘의 인간들아. 진실은 네이버블로그 검색에서 한옥지키기를 쳐서 사진도 보고,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