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옴표]그 끝은 자발성으로 열려있느냐 아니냐로 판단돼야

* 교육에서 강제라는 굴레를 벗겨낼 수 있을까. 스스로 잘하고 흥미로워하고 재미있어하면 교육이 필요하겠는가. 어렵고 하기 싫고 귀찮아하지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라 교육하려는 것이 아닌가. 진정한 교육은 강제성이 있느냐 없느냐로 가름하면 안 된다. 시작은 강제성이 있으나 그 끝은 자발성으로 열려있느냐 아니냐로 판단되어야 마땅하다.
- 이권우, <호모부커스>중에서 -
 '교육은 자유다'라고 여겨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이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교육을 받은 사람은 자유로와진다. 자유로울 수 있다. 교육을 통해 그 끝이 자발성으로 연결될 때 더욱 그렇다.
 이책을 통해 이권우라는 이름을 처음 알았다. 본인은 나름 유명한 도서평론가라고 자처하던데(^^)-비꼬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다른사람이 대단하게 여기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하는 일과 그 일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말이다- 책만 읽고 그에 대해 쓰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교육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역시 책을 읽는 사람은 모든 분야에 어느 정도씩은 일가견을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인건가. 책의 말미에는 책을 통한 독서 교육에 대해서도 풀어놓았다. 조금 사변적이기는 하지만...

 이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책읽기를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단지 작가와 독자로서의 소통에 머물거나 토론이나 인터넷을 통한 방법이 아니라 책 읽는 것 자체을 통한 소통. 타인과 고통과 아픔을 상상하는 힘 말이다.   
*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도 책은 읽어야 한다. 상상력을 익히고 키우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그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바로 겪어보지 않아도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신자유주의는 끊임없이 세계 차원에서 타자를 만들어 낸다.'우리'와 다른 것을 타자로 이름 짓고, 그들을 차별한다. 다른 때문에 차별받는 무리는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우리'의 무리 속에 머무는 한, 그 아픔을 짐작할 수 없다. 하나, 우리가 상상하는 동물이라면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자고로 책 또는 문학은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라고 우리에게 귀띔해 왔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일수록 억압받고 탄압받는 이들의 삶을 그렸다.
*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교앙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폭탄 공격을 당하는 쪽의 고뇌와 아픔을 상상하는 힘은 전쟁에 저항하고 평화를 쌓기위한 기초적 능력이다. (서경식, 재인용)
 책읽는 것은 나를 반성하고 들추는 일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공감하고 소통할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 그게 삶이다. 나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 
이글루스 가든 - 3일에 한 권 책읽기
이글루스 가든 - 2주일에 책 한 권씩 읽기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소리 | 2009/06/02 23:53 | 책꽂이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thevoice.egloos.com/tb/415806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