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었다고. 사람이

예매한 워낭소리를 봤다. 슬펐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건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이었다.  

대학 때 '법'에 관한 교양을 들었는데(민법인지, 가정법률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 첫시간에 교수가 그랬다. 한자로  법(法) 자를 쓰면서 '법(法)이란 물(水)흐르는대로 가는(去) 것이라고. 자연의 순리가 법이라고.

벌써 10년도 지났지만, 난 그 말을 이제 이렇게 이해한다. 그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래서 '물은 낮은 곳부터 채운다' 그렇다면 법은 철거민 옆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소설 '난쏘공'에 나오는 말대로 그들(철거를 집행하는 사람들)의 편에 법이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철거민들은 '불법 점거 농성'을 한 사람들이었고, 경찰 병력은 불법 시위와 무관한 '시민 안전'을 위해서 투입될 수 밖에 없었고, '유감스럽고, 가슴아프지만' 불법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사고였다고 했다. 

또 어떤이는 말했다. 거기에서 시위를 한 사람들 중엔 물론 갈 곳이 없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기심'으로 그곳에 시위하러 온 사람은 없었을까?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그들의 이기심이 더 클까, 건설사와 자본가들의 이기심이 더 클까?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꾼'이 있었대" 또 어떤이는 말했다. "보상금 더 받으려고 그랬던 거래."

그래 그렇다고 치자. 용산 구청의 표현대로 '생떼 쓰는' 사람들이라 치자. 재개발 주택이라 헐값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집, 몇 푼 안 되는 보증금과 넉 달치의 주거 이전비, 혹은  석 달치의 매출? 그걸 들고 그들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또 다른 지역의 재개발 직전의 주택? 그들은 '살 곳'과 '장사할 수 있는 곳'을 원했다. 얼마의 '돈'이 아니라 '생활' 아니 '생존'을 원했다. 우리나라 헌법 35조 3항에는 "국가는 주택개발정책을 통해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그래, 쾌적한 주거 생활. 죽어간 그들이 원했던 건 바로 그 '쾌적한 주거 생활'이었다.

그들이 왜 화염병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 왜 새총을 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죽어갔는지를 물어달라고.

사람이 죽었다고. 사람이.

by 소리 | 2009/01/21 20:5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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